고산 큰 스님은 1933년 경남 울주군(현 울산시)에서 태어나 12세 때 입산 출가해 3년간 행자 생활 후 1948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고, 1956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은 후 기도와 정진을 쉬지 않고 경(經), 율(律), 론(論) 삼장을 습득했다.
1961년 당대의 대강백으로 알려진 고봉(高峰) 큰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을 받고, 김천 청암사, 부산 범어사 등의 강원(講院)에서 후학을 지도했으며, 1972년에는 대율사 석암(錫岩) 큰스님으로부터 전계(傳戒)를 받아 대한불교 조계종의 전계대화상을 역임했다.
스님은 수행의 과정에서도 전법과 사찰 불사에 나서 1972년 서울 조계사 주지를 맡아 처음으로 불교합창단을 창설하는 등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다.
1975년 폐사에 가깝던 쌍계사 주지를 맡아 대대적인 불사에 착수해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의 사격(寺格)을 갖췄다.
1976년 부산 혜원정사, 부천 석왕사를 창건해 도심 포교의 토대를 닦았으며, 경남 통영 연화도 연화사와 보덕암 등 부처님 도량을 세워 낙후된 지역에 불연(佛緣)의 터전을 마련했다.
포교에 힘쓰면서도 평생 수행자로서의 강직함을 잃지 않으려고 정진하는 모습을 지키며 한 번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해 ‘지리산의 무쇠 소’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스님은 1998년 12월 종단 사태로 혼란한 상황에서 많은 지지를 받으며 제29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됐으나, 이후 법원이 선거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결해 1999년 총무원장 재선거가 치러졌지만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물러나 주변을 놀라게 하며, 통영 연화사에서 수행과 포교에 매진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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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원로의원, 2008년 조계종 전계대화상에 이어, 2013년 9월 쌍계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돼 마지막까지 후학들을 지도했다.
쌍계사(주지 영담스님)에 따르면 고산 큰 스님은 ‘春來萬像生躍動(춘래만상생약동ㆍ봄이 오니 만물은 살아 약동하는데) 秋來收藏待次期(추래수장대차기ㆍ가을이 오면 거두어들여 다음 시기를 기다리네) 我於一生幻人事(아어일생환인사ㆍ나의 일생은 허깨비 일과 같아서) 今朝收攝歸故里(금조수섭귀고리ㆍ오늘 아침에 거두어들여 옛 고향으로 돌아가도다)’라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고산 큰 스님의 영결식은 종단장으로 거행되며, 분향소는 3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쌍계사 팔영루에 설치되고, 다비식은 3월 27일 오전 10시 경내 도원암 앞에서 봉행된다. ☎(055)883-1901.